용어, 사전 본문
람폴라
Mariano Rampolla del Tindaro이탈리아의 성직자.
- 출생
- 1843. 8. 17, 시칠리아 폴리치
- 사망
- 1913. 12. 16, 로마
- 국적
- 이탈리아
레오 13세 때 바티칸에 자유주의 바람을 불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 카프라니카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성직 임명을 받은 람폴라는 고위성직자 대학에서 교회 외교관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1875년 마드리드 교황대사의 참사관으로 임명받았다.
1877년에 로마 가톨릭 신앙보급협회에서 일한 뒤 교황대사가 되어 마드리드로 돌아왔다(1882~87). 1887년 3월 14일 추기경 임명을 받았고, 2개월 뒤에는 레오 13세로부터 교황령 국무장관으로 임명받았다. 당시의 정치·사회 현실, 특히 당시에 유행하던 공화주의(republicanism)와 사회주의에 민감하던 추기경 람폴라는 그 사상들을 받아들여서 1891년 교황 레오가 회칙 〈새로운 것들에 관하여 Rerum Novarum〉을 낼 수 있게 했으며, 거기서 정부와 기업가들이 노동자 계층에 대해 져야 할 의무들을 강조했다.
1903년 레오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추기경 람폴라가 교황직을 계승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시스 요제프는 그를 선출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뒤 교황이 된 피우스 10세는 결국 왕들의 거부권을 철폐하고 람폴라를 성무의회 의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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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보리달마
중국 선종의 개조로 일컬어진다. 보리달마는 남인도 출신으로 520년 중국 광저우에 도착했다. 그해 10월에 선행으로 이름 높았던 양나라 무제와 만나, 단지 선한 행위를 쌓는 것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설파해 황제를 당혹시켰다. 그뒤 보리달마는 뤄양의 사오린사[少林寺] 동굴에서 9년 동안 면벽 좌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오랜 기간 깊은 선정을 닦았음을 말해 주는 설화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보리달마는 부처로부터는 28번째의 조사로 여겨지고, 중국 선종에서는 초조로 간주된다. 보리달마는 부처의 심적 가르침에 돌아가는 방법으로 선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일파를 선종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한 자료 중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오래된 자료로는 제자 담림이 기술한 〈약변대승입도사행론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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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김대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모방 신부를 통해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 교육을 받았고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임명되었다. 조선에 돌아와 전교 활동과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다가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2019년 11월 14일,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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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바울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도. '바울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성서>의 표기이며, 개신교 성경에서는 '바울'이라고 한다. 예수가 죽은 지 불과 몇 년 뒤에 회심한 그는 새로운 종교운동, 즉 그리스도교를 지도하는 사도(선교사)가 되었으며, 그 운동이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서신들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교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울로의 서신들은 신학적인 정교함과 목회적인 이해를 생생히 드러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사상에 대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바울로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약성서〉 외에는 믿을 만한 자료가 없으며, 그 1차적인 자료는 바울로가 쓴 서신들이다. 그 가운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Ⅰ·Ⅱ)·〈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바울로 자신이 직접 쓴 서신들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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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토마스 아퀴나스
1323년 성인으로 추증됨. 그리스도교 철학자. (이). San Tommaso d'Aquino. 별칭은 Doctor Angelicus.
인성·창조·섭리를 다룬 형이상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들로부터 그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대이교도대전 Summa contra gentiles〉이라는 2편의 걸작을 써서 라틴 신학을 고전적으로 체계화한 신학자였으며, 교회 전례에서 사용되는 몇 편의 아름다운 찬송가를 지은 시인이었다. 현대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가운데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를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며 신학자로 인정한다(→ 토마스주의, 그리스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