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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창민
Choo Chang-min추창민은 1966년 대구에서 출생해서, 대구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던 추창민은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1997년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1997)의 연출부를 시작으로, 김성수의 <태양은 없다>(1998)에서 스크립터로, 장문일의 <행복한 장의사>(1999)에서 조감독을 거치면서 다수의 영화를 통해 연출 감각을 익혔다. 추창민은 이러한 영화들에서 배운 연출력으로 2000년 단편영화 <사월의 끝>(2000)을 만들었다. 추창민은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하였다. 2005년 <마파도>(2005)라는 코미디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추창민은 시나리오를 자신이 직접 쓰면서 자신의 색깔에 어울리는 작품을 구상하였는데, 잔잔한 흐름을 쫓아갈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였다. 2006년 발표된 <사랑을 놓치다>(2006)는 그런 류의 영화였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이후 추창민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통해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출생
- 1966년 대구
- 데뷔
- 2005년 <마파도>
추창민 Choo Chang-min (1966~ )
한국의 영화감독. 추창민은 1966년 대구에서 출생해서, 대구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던 추창민은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1997년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1997)의 연출부를 시작으로, 김성수의 <태양은 없다>(1998)에서 스크립터로, 장문일의 <행복한 장의사>(1999)에서 조감독을 거치면서 다수의 영화를 통해 연출 감각을 익혔다.
추창민은 이러한 영화들에서 배운 연출력으로 2000년 단편영화 <사월의 끝>(2000)을 만들었다. <사월의 끝>(2000)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내에게 젊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알게 된 남편은 아내의 이름으로 젊은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젊은 남자는 기차역에서 아내를 기다리는데, 옆 좌석에 있는 늙은 남자가 거슬린다. 결국 늙은 남자는 젊은 남자에게 단지를 하나 주고는 가버린다. 그 단지에는 유골이 담겨있다. 한 남자의 광기와 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따뜻한 사월의 어느 날 진실이 밝혀지면서 결코 아내와 남편, 남자는 행복한 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잔인함과 비정함을 보여주었던 이 영화는 제4회 부천국제영화제 한국 단편부문에 상영이 되었고,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의 단편영화제에도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추창민은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완성하였다. 2005년 <마파도>(2005)라는 코미디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 영화는 남의 복권 당첨권을 갖고 도망친 여자를 잡기 위해 외딴 섬 마파도에 들어간 두 남자의 섬 생활기를 그리고 있다. 이정진, 이문식을 필두로 할머니들만 산다는 마파도의 주민 역을 개성있게 소화한 여운계, 김수미, 김을동, 김형자, 길해연 등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오는 웃음을 유발시키면서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내었다. 결국 일확천금에 대한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당첨금을 위해 벌였던 모든 일들은 허망하게 끝이 나고 만다.
추창민은 시나리오를 자신이 직접 쓰면서 자신의 색깔에 어울리는 작품을 구상하였는데, 잔잔한 흐름을 쫓아갈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였다. 2006년 발표된 <사랑을 놓치다>(2006)는 그런 류의 영화였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우재와 연수도 그렇듯이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세월은 흘렀다. 나이가 든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를 하게 되고, 그들은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한 남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설경구와 송윤아가 멜로연기를 펼치면서 첫사랑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추창민의 세 번째 영화는 강풀의 웹툰이 원작인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였다. 이 영화는 웹툰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깨고 170만 명의 관객동원을 하였다. 중견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는 이순재, 김수미, 송재호, 윤소정이 출연해서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 의리, 따뜻함을 선사한 영화였다.
추창민의 네 번째 영화는 2012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였다. 만담꾼 하선이 광해군을 대신해서 왕이 된다는 허구적 상상력이 결합된 영화로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글귀에서 시작되었다. 15일 동안 광해군을 대신해서 왕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하선을 통해 대중들은 단순한 극적 재미를 넘어서 그 시대가 바라는,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도 통용될만한 이상적인 지도자 상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 하선과 광해군의 1인2역을 소화한 이병헌과 광해군을 보좌하는 허균을 연기한 류승룡의 앙상블로 억지를 가장하지 않으면서,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웃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탄생되었다. 추창민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통해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고, 제49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과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국내 다수의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하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겸비한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역대 천만 관객동원 순위 랭킹 5위에 등극되면서 1,232만 명의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가 되었다. 이후 추창민은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하고,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추창민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나가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따뜻함과 소중함을 영화 속에 표현해내고 있는데, 그 진행방식이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익숙함 속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영화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작품 목록<마파도>(Mapado), 한국, 2005)
<사랑을 놓치다>(Lost in Love ( Sarang-eul Nochida ), 한국, 2006)
<그대를 사랑합니다>(Late Blossom (Geudaereul Saranghamnida), 한국, 2010)
<광해, 왕이 된 남자>(Masquerade (Gwanghae, Wangi Doen Namja), 한국, 2012)
<7년의 밤>(7nyeon-ui bam), 한국,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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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전 태종
태종은 1367년(공민왕 16)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이며,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이다. 방원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태조의 사랑을 받았다. 자라면서 유학 공부에도 심취해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17세가 되던 1383년(우왕 9)에 문과에 급제했다. 태조 이성계는 무인 집안에 학자가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원에게 특별히 학식이 높은 선생님을 붙여주고 여러 선비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방원은 글만 읽는 유생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버지 못지않은 무인의 기질과 그보다 큰 야망이 있었다. 방원의 야망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392년(공양왕 4)에 정적인 정몽주를 제거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정몽주는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이성계가 이색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정몽주는 이성계와 같은 친명파로서 위화도 회군을 지지하고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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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한양의 설계자 정도전의 허망한 최후
조선 시대에 광화문 거리는 육조 거리였다. 좌우에 이·호·예·병·형·공조의 육조 관아가 배치되었는데 오늘날 시민열린마당 자리에는 의정부(議政俯)가 있었다. 의정부는 백관을 거느리고 서정을 총리하던 최고행정기관으로 국가 정책의 큰 줄기를 결정하던 곳이다. 도당(都堂) 또는 황각(黃閣)이라고도 한다. 의정부에는 정1품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삼정승이 있었고, 삼정승을 보좌하던 종1품 좌·우찬성과 정2품 좌·우참찬이라는 고관이 있었다. 의정부 남쪽 종로구청 일대는 수진방(壽進坊)이라 불렸다. 정도전이 한양의 지명을 정할 때 집을 짓고 장수한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수진방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서 오늘날 수송동(壽松洞)과 청진동(淸進洞) 일부에 해당한다. 이 부근에는 궁중에서 사용되는 말을 기르고 궁중의 가마, 외양간, 목장 등을 맡아 보던 사복시(司僕寺)가 있었다. 사복시는 내사복시와 외사복시가 있는데 내사복시는 경복궁 영추문 안과 창경궁 홍문관 남쪽에 있었고, 외사복시는 수송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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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종
광종은 고려 전기 제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9~975년이며, 동복형인 정종의 선위로 왕위에 올랐다. 956년(광종 7)에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였고, 958년(광종 9)에는 과거제도를 시행하였다. 960년(광종 11)에는 백관의 공복도 제정하였다. 왕권강화를 위해 호족세력의 반발을 철저하게 제압하였다. 특히 과거제도와 독자적으로 육성한 시위군졸은 문무 양면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세력 기반이 되었다. 중국 여러 왕조와의 외교 활동과 다양한 국방 대책도 치적에 속한다. 불교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사·왕사 제도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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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광해군
대동법과 호패법을 시행하고 실리적 외교정책을 폈던 조선 제 15대 왕. 선조의 차남이자 서자로 이름은 혼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해 위급한 상황에서 세자가 되었고 환란 중 선조를 대신해 정무를 보았으며 전후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고 공정한 세금을 물리기 위해 양전와 호패법을 시행하는 등 혁신적인 정치를 폈으나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후금이 강성해지자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실리 외교정책을 펼쳤지만 정책에 불만을 품은 서인 무리들이 반정을 일으켜 폐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