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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공사

貨泉公社

〈별들의 고향〉(1974), 〈바보들의 행진〉(1975), 〈겨울여자〉(1977) 등 1970년대 한국 영화사를 빛냈던 영화를 배출한 영화사. 화천공사는 다른 영화사들과는 달리 무역 회사에서 출발했다. 1858년 영화 제작업으로 등록했고 1960년대부터 한국 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화천공사는 일본의 도호나 헤럴드 등을 통해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영화를 수입하는 데 탁견을 보였는데 마카로니 웨스턴 〈황야의 은화 1불〉과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는 한국에서 지은 제목을 일본에 역수출하기도 했다.

외화 수입에 치중했던 화천공사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 영화계에 기폭제를 터뜨린 것은 〈별들의 고향〉부터이다. 스물아홉의 이장호를 전격 기용해 만든 최인호 원작의 〈별들의 고향〉은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102일 동안 46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1973년 당시 한국 영화 편당 평균 관객이 1만8천 명이고, 충무로에 '영화계불황대책위원회'가 세워졌을 때이니 〈별들의 고향〉의 인기가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이후 화천공사는 이장호 감독과 〈어둠의 자식들〉(1981),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등을 만들었으며 김호선, 하길종 등 70년대 한국 영화의 세대 교체를 선언한 '영상시대' 감독과도 꾸준히 작업했다. 하길종 감독과는 〈바보들의 행진〉(1975), 〈속 별들의 고향〉(1978), 〈병태와 영자〉(1979) 등을 제작했으며, 김호선 감독과는 〈겨울여자〉(1977), 〈겨울여자 2〉(1982)를 만들었다.

화천공사는 이장호, 하길종, 김호선 등 일군의 신인 감독들에게 청년 문화의 새로운 감성에 부응할 영화를 꽃피울 터전을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당시 영화를 잘 만드는 중견 감독에 불과했던 임권택에게 작가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은 화천공사에서 〈상록수〉(1978), 〈족보〉(1978), 〈깃발 없는 기수〉(1979), 〈안개마을〉(1981), 〈만다라〉(1981), 〈오염된 자식들〉(1982) 등을 만들었는데 이중 〈만다라〉는 임권택 영화 중 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화천공사의 활기는 급격히 약화됐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하길종 감독의 〈땡볕〉(1985)이나 노동 문제를 다룬 박종원 감독의 〈구로아리랑〉(1989)같이 문제작을 내놓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팁〉(1986), 〈매춘 3〉(1993)처럼 시류에 편승하는 성애 영화를 드문드문 내놓다가 현재는 영화 제작을 사실상 중단하고 극장업에만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천공사는 2002년 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7개관 1,674석 규모의 멀티플렉스 씨네시티를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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