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사전 본문
존 포드
John Ford16~17세기 셰익스피어 이후에 활동한 영국의 극작가. 대표작은 <실연>, <사랑의 슬픔>, <불행히도 그녀는 창녀였다> 등이다. 1617년까지 런던 법학원 중 하나인 미들템플이라는 교육기관에 다녔으며, 1620년대 초에는 토마스 데커와 함께 3편의 희곡을 썼다. 1620년대 후반부터 공동작업이 아닌 독자적인 집필을 시작했으며, 이때 쓴 우울한 복수 비극 네 편으로 명성을 얻었다.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 최고의 비극 작가로 평가 받는다.
- 출생
- 1586. 4. 17, 잉글랜드 데본 일싱턴
- 사망
- 1639(?)
- 국적
- 영국
영국의 극작가. 존 포드의 복수 비극은 인간의 격정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꾸밈없는 아름다움, 고도로 세련된 시어를 보여준다. 1602년 미들템플이라는 일종의 법률 교육기관에 입학했으며 휴학기간(1606~08)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1617년까지 그곳에 다녔다.
존 포드는 토머스 데커와 함께 〈태양의 총아 The Sun's Darling〉(1624)와 〈웨일스 대사 The Welsh Ambassador〉(1623),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3편의 희곡 등을 비슷한 시기에 집필했다. 또한 토머스 미들턴과 새뮤얼 롤리의 〈스페인 집시 Spanish Gypsy〉(1623), 존 플레처의 〈인 강의 미녀 Fair Maid of the Inn〉(1626) 등 프랜시스 보몬트와 플레처의 희곡작품에서도 포드가 집필에 관여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공동작이 아닌 포드의 독자적인 희곡은 1627~38년경에 씌어졌는데, 그중 연대를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2편뿐이다.
〈실연 The Broken Heart〉·〈연인의 슬픔 The Lover's Melancholy〉(1628)·〈불행히도 그녀는 창녀였다 'Tis Pity She's a Whore〉·〈퍼킨 와벡 Perkin Warbeck〉·〈여왕 The Queen〉·〈순결하고 고결한 환상 The Fancies, Chaste and Noble〉·〈사랑의 희생 Love's Sacrifice〉·〈부인의 시련 The Lady's Trial〉(1638) 등이 존 포드가 남긴 독자적인 작품이며, 그는 주로 앞의 네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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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헬렌 켈러
헬렌 켈러는 일생을 농아와 맹인을 돕고, 사회주의 지식인으로서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에도 기여했다. 심한 병을 앓은 후 19개월 되던 때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1887년 7세때 앤 맨스필드 설리번을 만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개월도 안 되어서 설리번은 그녀의 손바닥에 수화 알파벳으로 사물의 이름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후두에 손가락을 대어 헬렌에게 진동을 '듣도록' 함으로써 말하는 법을 익히게 했다. 설리번의 지속적인 지도 속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전 세계 장애인 복지 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1964년에 대통령 훈장을 수상했다. <나의 삶>, <헬렌 켈러의 비망록> 등의 많은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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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지도 베티나 폰 아르님
베티나는 괴테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베토벤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독일 낭만주의를 꽃 피운 작가 아힘 폰 아르님의 아내였다. 문학과 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두 거인이 동시에 사랑한 여성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놀라운 존재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녀의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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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신영복
통일혁명당사건으로 20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한 진보학자이자 교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신영복(申榮福)은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경상남도 의령의 간이학교 사택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독서 서클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다른 대학이나 연합 동아리 지도에 주력했다. 1965년 숙명여자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안병직 등을 따라 잡지 〈청맥〉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원'에 참석하면서 훗날 '통일혁명당사건'으로 사형당한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청맥〉은 통일혁명당의 핵심인물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로, 종종 반미적인 논설이 실렸다. 1966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으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이문규·김질락은 사형을 당했고, 그는 여러 차례 재판 끝에 무기징역형을 받고 안양과 -
다음백과 방정환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의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한 작가로 호는 소파. 어려서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1917년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딸과 결혼하면서 손병희의 영향을 받아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이듬해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소년운동을 전개했다.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하고,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과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어린이'라는 명칭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동화창작과 번역, 구연, 강연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과로와 고혈압으로 인해 33세의 나이에 요절했다.